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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한 잔의 성공신화 스타벅스






스타벅스의 회장 하워드 슐츠는 커피가 이미 생활화 되어있는 1986년 미국에서 고급 커피점 사업을 시작하여 현재 전세계적으로 스타벅스의 브랜드 인지도를 나이키, 코카콜라에 버금가는 정도로 성장시킨 장본인이다. 생각해 보라. 80년대 후반 미국에서 전국적 커피점 사업에 뛰어드는 것을. 그것은 마치 지금 한국에서 김치제조 판매업에 뛰어드는 것만큼이나 참신성이나 혁신성이 없어 보인다. 특히 요즘 잘 나가는 하이테크 사업에 비하면 커피점 사업은 절대로 섹시하고 화려한 사업이 아니다. 커피는 미국에서 누구나 마시고 어디에서든 구할 수가 있는 제품이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그와 그의 스타벅스의 성공스토리는 평범한 곳에 성공이 숨어 있다는 중요한 진리를 우리에게 다시금 일깨워 주는 것이다. 한편 이 이야기는 고객을 만족시키기 위해서는 종업원을 주주들보다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몸소 실천해서 성공한 기업의 사례이기도 하다. 이 책은 이러한 교훈들을 전혀 지루하지 않고 흥미진진하고 또한 감동적으로 전해준다.


하워드 슐츠는 커피의 고급화를 추구하여 결국 성공했지만 정작 그의 출생과 성장은 어렵고 암울한 환경에서 이루어 졌다. 그의 부모님은 모두 2대째 뉴욕 브룩클린의 노동자 가족 출신이었고 그도 뉴욕의 빈민가 브룩클린에서 태어났다. 평생 블루 칼라 일을 전전했던 하워드의 부친은 돌아가실 때까지 자신의 처지와 일에 대해 아무런 긍지와 만족감을 갖지 못하셨던 분이지만 주말마다 하워드와 동생을 운동시합에 데리고 가곤 했다. 다행히 하워드 슐츠는 타고난 운동선수였기에 가난했음에도 불구하고 노던 미시간 대학교에 미식축구 장학생으로 입학하게 된다. 그의 말에 의하면 그는 졸업 후까지도 미래에 대한 뚜렷한 방향을 가지고 있지 않았었던 것 같다. 다행히 대학 졸업 후 일년 후 제록스사에 취직해서 세일즈맨으로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다. 무(無)에서 시작했기 때문일까. 승부근성을 가지고 위를 보며 달려간 결과 그는 그 지역에서 가장 인정받는 세일즈맨이 되었고 이를 기반으로 그의 나이 26세에 해마플라스트라는 가정용품 판매회사의 부사장으로 영입된다. 새로운 직장에서 높은 봉급을 받으며 그는 맨해튼의 고급 주택가에서 안정적이고 풍족한 생활을 누리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 특히 브룩클린 출신이라면 – 아마도 그러한 수준의 삶에 만족하고 안주했으리라.


그러나 1981년 그는 그의 일생을 바꾸어 놓은 운명적인 만남을 하게 된다. 그는 그 당시 시애틀 지역에서 소규모로 고급 커피원두 판매에 몰두하던 스타벅스의 창업주들과 만나게 되어 고급 배전커피(roasted coffee)에 대해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후 점점 그의 관심은 커피에 대한 열정으로 변해갔고 급기야는 잘나가던 회사의 부사장직을 버리고 그 당시 단지 5개의 점포만을 갖고 있던 조그만 스타벅스에 합류하게 된다. 스타벅스에서 근무한지 1년 정도 되었을 때 그는 이태리에 출장을 가게 되는데 바로 거기서 하워드는 스타벅스의 미래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얻게 된다. 밀라노의 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로맨틱한 분위기의 에스프레소 커피바에서 그가 경험한 에스프레소의 맛과 이태리식 커피바의 세련된 분위기는 그에게 신선한 영감을 불러 넣어 주었다. 고객과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깔끔하고 우아한 모습으로 서빙하는 배리스타(barista, 커피를 서빙하기도 하고 손님과 대화도 나누는 종업원)들을 보고서 그는 미국에도 이러한 이태리식 고급 커피문화가 전파되면 반드시 성공하리라는 확신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미국으로 돌아온 하워드는 스타벅스에서 그의 새 아이디어를 관철시키려 노력하지만 당시의 스타벅스의 경영진들은 보수적이었고 소규모로 있으면서 최고 품질의 커피원두를 판매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었다. 이는 스타벅스를 이태리식 커피 바와 결합시켜 성장시킬 수 있다는 하워드의 의견과는 일치하지 않았다. 그들은 오직 고급배전 커피원두의 판매에만 관심이 있었지 커피원두판매와 함께 점포에서 에스프레소를 서빙하는 것에는 부정적이었다. 스타벅스에 대한 충성심과 이태리식 에스프레소 바에 대한 비전사이에서 갈등하던 하워드는 결국 독립하기로 결정하여 일 지오날레(Il Gionale)라는 이름의 에스프레소 바를 시애틀에 열었다. 그가 자금유치를 위해 242명의 사람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는데 217명이 외면했다는 사실은 초기 사업시작의 어려움을 잘 대변해 줄 수 있을 것이다. 사실 그 당시 미국에서는 소프트 드링크류가 가장 인기 있는 음료로 자리 잡음에 따라 커피 소비량이 1960년 중반이래 계속 감소 추세에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실은 하워드의 강한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는 결국 필요한 자금을 모아 세 군데에서 에스프레소 바를 열수 있었고 고객들은 새로운 맛과 이태리식 커피바의 분위기에 찬사를 보냈다.


1987년 하워드는 뜻하지 않는 기회를 맞게 된다. 스타벅스의 내부 문제로 인해 스타벅스를 인수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의 비전은 전국적으로 이태리식 커피바를 확대시키는 것이었기에 그는 합쳐진 두 회사의 이름을 이미 많은 이들에게 친숙해져 있는 스타벅스로 결정했다. 그는 인수를 위한 자금을 공급해 주었던 투자자들에게 5년내 미국 내 125개의 새로운 점포를 개설할 것이라는 청사진을 제공하였다. 스타벅스는 실제로 급성장하여 당초의 계획보다 더 많은 점포를 열어 갔다.


새로운 회사는 성장을 하는 과정에서 초기 스타벅스의 고급 커피맛을 유지하기 위해 남다른 노력을 하였다. 좋은 커피는 좋은 물에서 시작된다는 전제하에 스타벅스의 바에서는 정수기를 사용하였다. 그리고 항상 최고급 원두인 아라비카(arabica)종만을 사용하고 에스프레소를 추출하는 과정에서는 18내지 23초에 추출하는 원칙을 반드시 준수한다. 이러한 결과 LA에 진출했을 때 LA Times는 스타벅스를 미국에서 가장 훌륭한 커피라는 칭송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세밀한 품질관리가 유지되려면 잘 훈련된 배리스타들을 반드시 필요하였다. 스타벅스의 성공의 비결이 바로 여기에 달려 있다고도 볼 수 있었다. 하워드는 일찍부터 종업원의 중요성을 간파하고 우수한 인력을 배리스타로 채용하고 교육하며 이직이 없이 조직내 융합시키는데 아낌없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무엇보다도 배리스타들이 최고급 커피를 서빙한다는 것에 긍지와 애착을 갖게 하기 위해 열성을 쏟았다. 배리스타들이 성심 성의껏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 고객에게 서빙할 때 진정한 고객만족이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우선적으로 스타벅스에 일하는 것이 기쁨인 배리스타를 양성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래서 그는 모든 종업원들을 동업자라고 부르며 스톡옵션을 제공했다. 비상장회사에서는 스톡옵션을 부여할 수 없다는 규정에도 불구하고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특별허가를 받아가며 상장전에 모든 종업원에게 스톡옵션을 주었던 것이다. 이는 소매업체에서는 처음이고 당시 업계에서는 파격적인 것이었다. 또한 초기 성장기의 누적된 적자에도 불구하고 과감하게 의료혜택의 범위를 파트타임 종업원들에게까지 확산하였다. 하워드는 스타벅스가 직원들의 열정적인 헌신이 없이는 고객의 마음을 사로잡을 수도, 번창할 수도 없다고 믿었던 것이다. 아마도 여기에는 자신의 아버지가 평생 직장에 만족을 못하고 아무런 긍지 없이 살다 가셨다는 사실도 많은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그는 만약 그의 아버지가 스타벅스의 직원으로 근무했으면 훨씬 보람된 생을 영위했으리라고 토로하고 있다. 스타벅스가 주주나 고객보다 종업원의 만족을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다음의 구절에 함축적으로 잘 나타나 있다 – “우리는 커피를 서빙 하는 사업이 아니라 커피를 서빙 하는 사람 사업에 종사하고 있다”.


따라서 스타벅스는 여러 해 동안 상품의 홍보보다는 직원들의 교육에 더 많은 비용을 지출했다. 1987년 이후 10년 동안 스타벅스는 광고료로 1,000만 달러 미만을 지출했다. 대신 스타벅스는 사람중심, 생산중심에 치중하여 고객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하려 했다. Proctor & Gamble과 같은 회사의 브랜드는 대량 유통과 매스미디어 광고를 활용하여 이루어 진 반면 스타벅스는 전혀 다른 접근법으로 브랜드 이미지를 확립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폴져스, 맥스웰 하우스 등의 고객을 빼앗는데 치중하지 않았고 광범위한 유통망을 구축하는데도 치중하지 않았다. 그들의 브랜드는 단지 훌륭한 커피를 서빙 하는 것에 자부심을 느끼는 배리스타들이 커피의 낭만에 대해 고객들에게 교육을 시킴으로서 자연스레 전파되었다.


인적자원에 대한 배려와 함께 스타벅스는 제품의 고품질 유지를 위해 대부분의 경우 프랜차이즈 사업방식을 배제하고 직접 사업을 하는 독특한 방식을 고수하였다. 프랜차이즈는 사업을 전국적으로 확장시킬수 있는 합리적인 방법임에도 불구하고 스타벅스는 품질관리에 집착하여 커피를 생두에서 추출하는 과정부터 고객에게 한잔의 커피를 판매하는 단계까지 모든 것을 직접 다루었다. 스타벅스에게 프랜차이즈는 고객과 회사의 사이를 가로막는 중간 상인에 불과했던 것이다.


결과적으로 스타벅스는 1992년 상장을 하고 성장을 거듭하여 현재는 그 브랜드가 이미 세계적으로 알려지기 시작했다. 물론 이렇게 성공하기까지는 여러 험난한 과정이 있었으나 하워드는 그가 이태리에서 얻었던 비전에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80년 후반 평범한 일용품으로 간주되었던 커피를 미국에서 다시금 ‘재발견’하였던 것이다. 전술했듯이 커피는 신종 유행 사업이나 소위 하이테크 산업이 아니다. 오히려 80년대에는 하락세에 있던 사업이라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스타벅스의 사례는 하락산업에서조차 경영자가 소비자에게 새로운 가치를 제공할 수 있다는 비전과 통찰력을 갖추고, 또한 실제로 그렇게 사업을 이끈다면 궁극적으로 성공하게 된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이것이 아마 이 책에서 얻는 가장 중요한 교훈중의 하나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