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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순한 엔지니어”에서 최대 포털 기업 CEO로, 이해진











 요약

1967년 생. “평범한 엔지니어” 출신으로 삼성 SDS에서 근무하며 일이 너무 지루하고 무의미하다고 생각, 동료들과 함께 삼성SDS 사내 벤처 1호 회사인 네이버를 설립한다. 단순한 검색 서비스 회사로 출발한 네이버는 이후 포털 업체로 발전, 한게임 등을 인수하며 수익성을 확보하고 시장 경쟁력을 갖춘다. 특히, 검색 시장에 사활을 걸고 역량을 집중, 2002년 지식검색 오픈을 계기로 인터넷 검색 1위 자리에 오른다. 부동의 검색 1위 자리를 차지한 네이버는 승승장구, 잇달아 메이저 서비스들을 성공시켰으며, 이해진 사장은 회사의 주식 상장으로 천억원 대의 자산을 보유한 갑부가 된다.







 사실들

서울대 컴퓨터 공학과 졸업 후 한국 과학기술원 전산학 석사를 딴 뒤 삼성 그룹 입사. 명문대 출신이긴 했지만 매우 평범한 엔지니어였음. 학창시절부터 코딩에는 큰 재주가 없어 뛰어난 프로그래밍 능력을 갖춘 다른 동기들을 부러워했다고 함.


삼성 SDS에서 근무하던 중 “1년간 조건 없이 특정 프로젝트를 연구할 수 있게 하는 제도”가 생김. 1994년 데이터베이스 검색 서비스 프로젝트를 구성, 삼성 SDS내부에 정보 검색엔진 개발팀을 운영함. 이때 개발된 검색엔진이 향후 네이버의 “원천 기술”이 됨.


2년간의 혹독한 연구 개발 끝에 1996년 이해진 사장은 상용 DB 검색엔진 개발에 성공한다. 그리고 이 검색엔진을 삼성 SDS의 PC 통신 서비스인 유니텔에 적용한다.


1997년 이해진 사장은 삼성 SDS 사내 벤처 1호 기업을 이끌게 된다. 이때 벤처 회사의 이름을  “검색하는 사람, navigator”에서 따온 네이버(naver)로 결정한다. 이해진 사장은 네이버를 당시 인기를 끌던 야후, 심마니, 까치네 같은 정보 검색 서비스로 특화 시킬 계획이었다. 그리고 검색 사용자들을 모아 전자상거래로 수익 모델을 창출하려 했다. 구체적으로, 검색에 사용자들이 몰리면 검색 결과와 매칭되는 책을 보여주고 판매한다는 “온라인 서점” 수익 모델이었다.


1998년 이해진 사장과 벤처 팀은 예술의 전당 근처에 조그만 사무실을 얻어 독립한다. 이들은 일단 당장 먹고 살기 위해 온라인 광고를 따와야 하는데 벤처 팀에는 영업을 해본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결국 이해진 사장이 A4 용지에 네이버를 소개하는 간단한 문구를 적은 뒤 무작정 광고 대행사를 찾아 다니며 영업을 뛰었다.


결국 SK 유통으로부터 받은 월 100만짜리 배너를 시작으로 네이버는 수익을 만들어 나갔고, 방문자 수와 페이지 뷰에서 급성장을 기록한다. 1998년 하루 100만 페이지 뷰였던 네이버는 1999년 300만 페이지 뷰를 기록한다.


1999년 이해진 사장은 삼성 SDS 임원들을 설득해 네이버를 완전한 벤처 기업으로 독립시키기로 한다. 네이버 팀은 각자의 통장을 털어 3억 5000만원을 만들었고, 삼성 SDS로부터 1억 5000만원을 투자 받아 자본금 5억원으로 독립 법인 네이버컴을 만든다. 법인 설립 후 한달 뒤 네이버는 벤처 캐피털인 한국기술투자로부터 100억원 펀딩을 받는다. 그리고 네이버는 검색 서비스를 기반으로 포털 사이트로 발전한다. 당시 국내 웹사이트 순위는 6위.


당시 인터넷 포털 시장은 다음과 야후 코리아가 선점하고 있었다. 다음은 메일과 커뮤니티 서비스로, 야후는 검색 서비스로 부동의 1위를 굳힌 상황이었다. 선두업체를 뒤쫓는 것은 무모한 짓이라 판단, 이해진 사장은 야후나 다음이 갖지 못한 경쟁력을 찾기 시작했다. 그 경쟁력은 바로 온라인 게임이었다. 2000년 4월 네이버는 인터넷 게임 업체 한게임 커뮤니케이션과 합병, (2001년) NHN(Next Human Network)을 설립한다 이때부터 이해진 사장은 한게임의 김범수 사장과 함께 공동 CEO를 맡는다.


한게임과 네이버의 시너지 효과는 두드러졌다. 한게임 가입자는 1천만 명으로 급증, 2000년 말엔 하루 통합 페이지뷰가 1억을 넘어선다.


원래 이해진 사장은 포털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새롬 기술과 합병하려 했었다. 당시 초대형 인터넷 기업이었던 새롬 기술과 합병할 경우 단숨에 국내 정상의 인터넷 기업이 될 수 있다는 판단이었다. 그러나 네이버의 대다수 직원들은 합병에 실질적인 효과가 없다고 반발했고, 새롬 기술의 주가 하락까지 겹쳐 이해진 사장 단독으로 밀어 붙였던 합병 계획은 성사 직전에 무산되고 만다.


NHN의 승부수는 다시 검색으로 돌아온다. 인터넷 검색을 이용하는 사람의 수는 급격히 늘고 있었고, 포털 사업에서 검색이 받쳐주지 않으면 다른 어떤 서비스도 성공하기 어렵다는 결론이었다. 게다가 검색결과 페이지를 통해 들어오는 온라인 광고 금액은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었다.


그래서 시도한 것이 2002년 10월 오픈한 지식검색. 당시 디비딕을 모방한 지식검색은 문답형으로 사용자들이 찾는 지식에 대한 답을 직접 올리게 해 검색결과 페이지의 양과 질을 높이는 서비스였다. 네이버는 지식검색의 성공을 위해 서비스 오픈 전에 수백명의 파트타이머를 고용, 엄청난 양의 지식 문답 데이터를 쌓아 올렸다. 그리고 오픈 후 대대적인 마케팅에 나선다.


네이버는 사활을 걸고 지식검색에 집중했고, 그 결과 어마어마한 성공을 거두며 마침내 2003년 10월 부동의 검색 1위였던 야후 코리아를 제치고 검색시장 1위에 오른다. (현재 네이버는 한국 인터넷 검색시장의 60% 이상을 점유하며 독점 체제를 구축, 인터넷 포털 기업 수익률에서도 압도적인 1위를 고수하고 있다.)


검색시장의 수위를 차지한 NHN은 거칠 것이 없었다. 이후 오픈한(2003년 7월) 블로그와 카페 등 커뮤니티 서비스도 검색 엔진과 연계한 뒤 연이어 “대박”을 기록하며 다음 카페와 사이월드의 아성을 위협한다. (현재 네이버는 블로그 시장에서 압도적인 1위, 인터넷 카페 시장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네이버는 이후에도 끊임없이 검색 결과 콘텐트의 다양화와 양질화에 집중한다. 최근 오픈한 책 검색과 두산과의 제휴를 통한 지식 구축 사업이 대표적인 예.


2004년 NHN 이사회 의장으로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고 NHN은 김범수 사장 단독 경영 체제로 바뀐다. 이해진 사장은 2002년 코스닥에 등록된 NHN 주식으로 순식간에 천억대의 갑부가 된다. 2005년 기준 이해진 사장은 주식으로만 2206억원의 자산을 보유,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주식 재산을 지닌 인물 중 하나가 된다.


이해진 사장은 전형적인 외유내강형 인물. 조용하고 차분한 어투에 말단 직원에게도 경어를 사용한다. 그는 잘못을 저지른 직원에게 화를 내지 못해 속상해 할 정도로 전형적인 “유순한 엔지니어” 타입이다. 그러나 사업적인 측면에선 누구보다 판단이 정확하고 심지가 굳었다. 인터넷 사업의 핵심을 간파하고  NHN의 사업 방향을 항상 “승리하는 쪽”으로 이끌었다. (이해진 사장은 큰 그림을 그릴 뿐, NHN 서비스의 거의 대부분의 전략과 의사 결정은 팀 단위로 이뤄진다. 팀내의 작은 아이디어라도 진행하기로 합의가 되면 별다른 복잡한 결정 절차 없이 재빠르게 진행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