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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vid Vice·Mark Malseed 의 “The Google Story” 에서

David Vice·Mark Malseed 의 “The Google Story” 에서

오늘날 구글이 Disney와 General Motors 두 회사를 합친 것보다도 더 높은 시장가치를 자랑하는 것을 감안할 때 이 회사의 두 설립자인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과 래리 페이지(Larry Page)가 원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야심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1998년 회사 설립 당시 동사는 이렇다 할 사업계획이나 전략 같은 것을 갖고 있지도 않았다. 그저 브린과 페이지는 똑똑한 직원들을 모아놓고 재미있는 일에 몰두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든다는 생각만 했던 것이다.
 
세르게이 브린은 1973년 8월 21일 러시아의 모스크바에서 태어났다. 여섯 살 때 그의 부모는 반유태주의를 피해서 미국으로 이민을 왔다. 세르게이의 부모는 둘 다 전문직을 갖고 있었다. 그의 모친은 현재 NASA의 Goddard Space Flight Center에서 과학자로 일하고 있으며 부친은 University of Maryland에서 수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그런 때문이었는지 브린 집안에서는 교육을 강조하는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자리잡고 있었다. 세르게이는 19살 때 University of Maryland를 졸업하면서 수학과 컴퓨터 사이언스 분야에서 우등상을 받았다. 그런 다음 그는 National Science Foundation에서 수여하는 장학금을 받고 Stanford University 박사과정에 입학했다.
 
래리 페이지는 1973년 3월 26일 미시건에서 탄생했다. 그의 부친인 칼 페이지는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최초로 배출한 컴퓨터 사이언스 졸업생으로서 래리가 크면서 자연스럽게 컴퓨터를 익히는 환경을 제공했다. 그의 모친은 컴퓨터 분야 석사학위를 갖고 데이터베이스 분야 컨설턴트 일을 하고 있었다. 양친은 래리가 8살 때 이혼을 했지만 두 사람 모두 Michigan State University에서 강의를 했었다. 래리는 1995년 컴퓨터 엔지니어링 전공으로 University of Michigan에서 학사학위를 받고 같은 해에 Stanford University 박사과정 입학허가를 받았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이 맨 처음 만났던 것은 1995년 당시 세르게이가 Stanford에서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던 장소에서였다. 두 사람은 모두 어떠한 주제에 대해서든 논쟁을 벌이길 좋아했기 때문에 즉시 친해질 수 있었다. 페이지와 브린은 상대방을 못마땅하게 생각했지만 적어도 지적으로는 맞상대가 될만한 적수라고 간주했었다. 얼마 가지 않아 이들은 무슨 주제에 대해서든 말로 맞불기 시작했다. 세르게이는 목소리가 크고 외향적이었던 반면 래리는 좀더 조용하고 내성적이었다. 그러나 두 사람 간의 논쟁은 그 후 지금까지 내려오는 깊은 우정의 토대가 됐다.
 
페이지와 브린은 모두 교수 아들이었던 까닭에 자신들도 학계에 머물 것이라는데 대해 당연하게 받아들였었다. 브린의 지도교수인 Motwani 교수는 박사학위 논문 토픽으로 수많은 데이터 중에서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내는 새로운 방법을 찾아내는 것에 대해 써보라고 그에게 제안했다. 1990년대 중반 당시 전혀 정리가 되지 못한 인터넷에서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아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이 시기의 검색엔진은 WebCrawler나 Lycos, Magellan, Infoseek, Excite, HotBot 등으로 대표됐다. 의미 있는 정보를 찾아낸다는 필요에 부응하여 또 다른 두 명의 Stanford 졸업생인 Jerry Yang과 David Filo는 수작업으로 일일이 검색어를 정리하여 알파벳 순서로 디렉토리를 만들기 시작했으며, 이는 나중에 가서 Yahoo!의 모태가 됐다. Motwani 교수는 브린에게 검색을 하는데 이것말고도 더 나은 방법이 있을 수 있다고 말했다.
 
페이지는 AltaVista 검색엔진을 사용해보면서 검색결과에 더해 나타나는 정보의 하나인 링크에 주목하여 이로부터 얼마나 많은 정보가 얻어질 수 있는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월드와이드웹을 자신의 데스크톱 컴퓨터에 모두 다운로드 하겠다는 야심적인 마음을 먹었다. 그는 스파이더라는 이름의 자동 소프트웨어를 통해 모든 웹사이트를 방문하여 각 웹 페이지에서 컨텐츠를 다운로드 하도록 했다. 쉽게 예상할 수 있었던 것처럼 그런 계획은 원래 목표에 가깝게 가지 못했다. 그럼에도 그의 프로젝트는 여전히 가능성이 있는 듯이 보였다. 브린과 지도교수 Motwani는 그런 식으로 모든 링크를 찾아보는 식의 접근법이야말로 보다 나은 웹 리서치를 하는 지름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페이지는 한 가지 이론을 만들어냈다. 학술논문에서 항상 다른 논문을 인용을 하는 것과 같은 방식으로 모든 링크가 다 각기 다른 가치를 갖고 있다는 아이디어였던 것이다. 페이지는 중요한 웹사이트에 대한 링크가 아무도 찾지 않는 웹사이트 링크에 비해 훨씬 더 가치가 있다는 주장을 내세웠다. 그는 가장 많은 수의 링크를 갖는 웹사이트가 그렇지 못한 사이트보다 더 중요하다는 논리에 따라 일정한 랭킹 시스템을 정립했다. 그는 이런 링크 랭킹 시스템을 자신의 이름을 따서 PageRank라고 명명했다.
 
1997년 초에 브린과 페이지는 이 PageRank 아이디어를 적용하여 박사학위 논문을 공저하기로 합의했다. 이들은 또 BackRub이라는 이름의 초보적인 검색엔진을 만들어내서 웹 페이지와 연결하는 링크를 분석하는데 활용했다. 이런 과정에서 이들은 부지불식간에 인터넷 최초의 랭킹 시스템을 개발해냈고 이는 나중에 가서 정보검색을 할 때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가 됐다.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이렇게 만들어진 검색엔진에 뭔가 그럴듯한 이름을 붙이고자 했다. 이들은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는데 며칠을 허비하면서 숱하게 많은 이름을 끄집어냈다가 버리곤 하는 과정을 반복했다. 마침내 이들의 친구 중 하나가 방대한 분량의 정보를 검색하여 정리하려고 한다는 의미에서 googolplex(10의 100승)라는 이름이 어떻냐고 제안했다. 이 이름은 괜찮긴 한데 단어를 Googol로 약간 줄이는 것이 낫겠다고 결정이 났다. 그러나 페이지가 이 이름을 컴퓨터에 입력할 때 자판을 잘못 쳐서 Google로 낙착이 되고 만 것이다. 이 단어는 인터넷에서 누구도 사용하고 있지 않았으므로 자신들의 검색엔진 이름을 Google.com으로 등록하게 된 것이다.

구글의 초기 펀딩

1997년 당시까지 페이지와 브린은 Google.com을 그저 박사학위 논문 프로젝트의 일부로만 간주했었다. 이들은 따라서 이 검색엔진을 Stanford University의 학생, 교수나 친구들에게 얼마든지 쓸 수 있도록 했다. 그러나 머지 않아 Google.com의 인기는 입소문을 통해 급속하게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에 따라 Stanford 대학구내의 Office of Technology Licensing에서는 구글 기술을 특허 출원하기로 결정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웹디자이너를 고용할만한 돈이 없었기 때문에 매우 단순한 홈페이지를 만들 수밖에 없었다. 이들의 홈페이지는 검색엔진 이름과 검색어를 입력할 수 있는 박스만 덩그러니 있는 보잘것없는 것이었다. 이런 디자인은 수많은 그래픽과 배너 광고가 어지럽게 널려 있는 기존의 다른 검색엔진과는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이었다.


검색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페이지와 브린은 검색서버에 컴퓨팅파워를 더하는데 전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 많은 투자를 할 수 없는 형편이었던 까닭에 이들은 컴퓨터를 스스로 조립하여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설치하는 방법을 썼다. 이들은 또 대학 캠퍼스를 뒤지고 다니면서 창고에 처박혀 있는 주인 없는 컴퓨터를 최대한 활용했다. 대학당국은 서버 파워를 늘려주기 위해 이들에게 1만 달러라는 자금을 대주기도 했다.


이 시점에서 브린과 페이지는 구글에 대해 여전히 별 희망을 걸지 않고 있었다. 이들에 있어 구글은 아직도 학위논문 프로젝트였던 동시에 약간의 상업적 잠재가치가 있는 상품이었다. 이들은 PageRank 기술과 검색엔진 소프트웨어를 판매하면 어떨까 생각했다. 이들은 AltaVista와 Excite, Yahoo 등 회사의 대표를 만나면서 자신들의 기술을 100만 달러에 사지 않겠느냐고 제의했다. 검색엔진 업체들은 모두 그런 제의를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Yahoo의 공동설립자 David Filo는 두 사람에게 박사과정을 잠시 그만두고 검색엔진 상업화 비즈니스에 뛰어드는 것이 어떠냐는 조언을 해줬다. Filo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여전히 어떻게 할지 결정을 하지 못했다.


새로운 기술을 갖고 어떻게 해야 할지 망설이는 동안에도 이들은 구글의 기능을 개선하는 데 게으르지 않았다. 1998년 7월에 이들은 각 검색 결과에 대해 짤막한 요약설명을 붙이기 시작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검색엔진 사용자들은 실제 사이트를 방문하지 않고도 이 사이트에 어떤 정보가 있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두 사람은 또 구글 사용자들의 편리를 도모하기 위해 다른 기술들을 개발하는데 밤낮을 가리지 않고 일했다. 결국 페이지와 브린은 구글을 제대로 성장시키려면 학교를 그만두고 펀딩을 받아야 하겠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교수들 가운데 한 사람은 자금지원을 받기 위해선 앤디 벡톨샤임(Andy Bechtolsheim)을 만나봐야 할 것이라고 이들에게 조언을 해줬다. 벡톨샤임은 팔로알토에서 가장 잘 알려진 사업가로서 Sun Microsystems의 공동설립자이자 몇몇 성공적 기업에의 엔젤투자가로도 이름난 인물이었다. 벡톨샤임은 페이지와 브린을 만난 후 이들의 아이디어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 이에 더해 두 젊은이가 달랑 파워포인트 자료만을 갖고 온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작동이 되는 소프트웨어 제품을 내놓은 것에 대해서도 호감을 가졌다. 벡톨샤임은 솔직하게 두 사람 앞에서 이렇게 얘기했다.


“이건 몇 년 만에 처음으로 보는 정말 그럴듯한 아이디어다. 내가 적극 지원해주겠네.”


페이지와 브린은 이런 뜻밖의 호의에 어떻게 반응을 해야 할지 몰랐다. 벡톨샤임은 당황해 있는 두 사람에게 당장에 수표 한 장을 써줄 테니 이 돈으로 새 컴퓨터를 몇 대 사라고 제의했다. 그런 다음 나중에 만나서 자신이 투자의 대가로 무엇을 요구할지를 구체적으로 얘기해주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벡톨샤임은 두 사람에게 회사를 정식으로 등록시켰는지 조차도 묻지 않고 Google Inc.라는 이름으로 10만 달러짜리 수표를 써줬다. 이 금액은 별다른 생각도 없이 그저 당장 머리에 떠오르는 숫자를 써넣은 것이었다고 그는 나중에 털어놓은 바 있다.
페이지와 브린은 이 같은 엄청난 신뢰의 표시에 대해 어쩔 줄 몰라 하며 버거킹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투자유치 성공을 축하했다. 페이지는 Google을 정식 회사등록하고 이 이름으로 은행계좌를 틀 때까지 2주 동안이나 이 수표를 자신의 책상서랍 속에 고이 보관해놓았다. 얼마 가지 않아 벡톨샤임이 투자를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 다니던 다른 투자자들도 구글에 투자 의향을 밝혀 두 사람은 어렵잖게 100만 달러에 달하는 초기 펀딩을 얻어낼 수 있었다. 맨 처음 기술을 판매하려던 가격만큼의 돈을 순식간에 조달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두 사람에게 매우 인상적인 것이 아닐 수 없었다.


페이지와 브린이 확실하게 인지하고 있었던 사실은 제대로 된 검색을 할 수 있으려면 알고리즘이 좋아야 할 뿐만 아니라 과거 어떤 검색엔진에서도 써본 적이 없을 정도의 막대한 컴퓨팅파워가 필요하다는 점이었다. 구글의 검색 결과가 좋은 이유는 단순히 링크나 검색어 수만을 감안한 데서 기인한 것이 아니었다. 그런 대신에 구글은 우수한 검색 결과를 내놓기 위해 다른 요인들까지 고려했다. 페이지와 브린은 장래의 성공 비결은 검색 소프트웨어와 방법론을 향상시키는 동시에 컴퓨팅파워까지 최대한으로 높게 끌어올려야 한다는 사실을 굳게 믿고 있었다.


구글의 성공과 벤쳐캐피탈의 전성시대


1998년 가을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은 Stanford University에 정식으로 휴학계를 내고 자신들의 컴퓨터와 갖가지 장비를 근처에 있는 주택가 차고로 옮겼다. 이들이 이 차고를 사무실로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온수 목욕을 할 수 있는 욕조가 있었기 때문이라 한다. Google Inc.는 1998년 9월 7일자로 공식 등록이 됐고 두 사람은 최초의 직원으로 Stanford 박사과정 학생을 채용했다. 이들은 차고 사무실 임대료로 한 달에 1,700 달러를 냈으나 단 5개월 만에 이 사무실이 너무 작아 다른 곳으로 옮겨야 했다. 두 사람은 팔로알토 다운타운에 자리잡은 2층 사무실을 임대해 사무실로 쓰기 시작했다.


이 시점에서 두 사람이나 초기 투자자들 모두 마찬가지로 구글이 어떻게 돈을 벌 것인지 전혀 감을 잡지 못했다. 이들은 성능이 좋은 검색엔진이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뭔가 가치가 있을 것이라고 막연한 생각을 했을 뿐 구체적인 상업화 전략이라곤 아무 것도 갖고 있지 못했다. 당시 구글은 하루 평균 10만 건의 검색 요청을 처리하고 있었으며, 가능한 한 유능한 인재를 많이 확보하는데 전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페이지와 브린은 가급적이면 많은 지원자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끝내주는 기술과 스톡옵션, 공짜 간식 및 음료, 그리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우리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면서 인정해주는 기분을 느껴보라’는 구호를 내세웠다.


컴퓨터 전문지인 PC매거진에서 1998년도 100대 웹사이트 및 검색엔진 랭킹에 구글을 포함시킨 직후에 구글은 전보다 훨씬 더 많은 사용자를 끌어들일 수 있었다. 그로부터 몇 달 내에 구글은 하루 50만 건의 검색 요청을 받아들이게 됐다. 그런 수요에 부응하기 위해 구글은 끊임없이 컴퓨팅파워를 업그레이드해야만 했다. 이에 공식 사이트 오픈을 한지 단 8개월 만에 구글은 초기 펀딩 100만 달러를 다 소진해버리고 말았고 회사의 지속적 성장을 위해선 그보다 훨씬 더 많은 액수의 투자가 필요하다는 판단이 이뤄졌다. 브린과 페이지는 추가 펀딩을 위해서 벤처캐피털 투자가를 접촉을 하되 결코 자신들의 경영권을 희석시키지 않겠노라고 결심했다. 이들은 그래서 기묘한 펀딩 전략을 채택했다.

우선 두 사람은 실리콘밸리에서 가장 잘 알려진 벤처캐피털 회사인 Kleiner Perkins Caufield & Byers와 Sequoia Capital 두 업체에 동시에 접근하기로 했다. 그 이유는 두 투자회사가 동시에 구글에 투자를 하게 함으로써 이들이 서로 경쟁을 하느라 경영권을 어느 한 회사에 빼앗기지 않도록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두 사람은 Kleiner Perkins의 John Doerr와 Sequoia의 Michael Moritz를 만났다. 두 회사는 모두 구글에 투자를 하겠다고 승낙은 했지만 동시 투자는 원치 않는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결국 두 사람이 엔젤투자자들을 끌어 모아 두 투자회사에 대한 대안으로 내세우자 투자회사들은 다른 도리 없이 원래의 공동투자 방안에 동의를 하게 됐다. 이들은 각각 1,250만 달러씩을 구글에 투자하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두 회사는 펀딩에 일정한 조건을 달긴 했다. 즉 구글이 흑자 비즈니스로 전환할 수 있으려면 업계에서 경험이 많은 전문경영인을 영입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브린과 페이지는 그런 원로 경영인으로부터의 관리감독을 되도록이면 지연시켜야 할 것이라고 속으로 생각하면서도 이 조건에 동의했다.


2,500만 달러에 달하는 증자는 1999년 6월에 공식으로 성사됐다. 이 시점에서 회사는 17명의 직원을 두고 있었다. 그 직후 영입된 18번째 직원은 정신신경과 전문의인 Jim Reese 박사로 구글의 운영책임자를 맡았다. 그가 맡은 주된 책무는 구글의 컴퓨팅파워를 증강시킴으로써 두 공동설립자가 회사를 급속하게 성장시키는데 장애가 없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런 목적으로서 슈퍼컴퓨터에 투자하는 대신에 구글은 또 한 번 싸구려 PC 수백 대를 사들여 이를 네트워크로 한데 연결시키는 방식을 채택했다. 이런 네트워킹 시스템의 장점은 비용절감 측면뿐만 아니라 한 컴퓨터가 고장나면 시스템 전체의 성능에 아무런 영향을 끼치는 일 없이 고장 난 컴퓨터만 대체하면 그만이라는 데 있었다. 다수의 컴퓨터를 여러 곳에 분산 배치시켜놓음으로써 구글은 정전 등의 이유로 한 곳의 데이터센터에 장애가 발생해도 일체의 시스템 운영에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할 수 있었다. 1999년 여름 무렵에 구글은 300대의 컴퓨터에서 4천대가 넘는 컴퓨터를 보유하는 회사로 성장할 수 있었다.


이런 인프라 확대가 배후에서 진행되는 상황에서 구글은 세간의 주목을 점차 더 많이 받기 시작했다. 당시 검색엔진에 관한 한 가장 유명한 언론인은 「Los Angeles Times」와 「Orange County Register」에서 기자로 일하던 Danny Sullivan이었다. Sullivan은 각 검색엔진이 어떤 원리로 작동되는지에 대해 꼼꼼하게 연구한 후 〈A Webmasters Guide to Search Engines〉라는 이름의 연구보고서를 출간했다. 그는 또 Search Engine Watch라는 자신의 웹사이트를 운영하면서 검색엔진 계의 대부처럼 행세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가 구글을 최고의 검색엔진이라고 평가하자 사람들은 구글에 대해 다시 보기 시작했다. Sullivan이나 다른 언론인들의 찬사를 받은 덕택에 구글은 일체의 광고나 마케팅 비용 지출 없이도 톡톡한 홍보효과를 거두게 됐다.


1999년 말에 구글은 하루 평균 700만 건의 검색 요청을 처리하고 있었다. 이 자체는 매우 대단한 일이었으나 사업 자체로서는 이렇다 할 수입을 거두지 못하고 있었다. 회사는 조달해놓은 자본을 다 까먹고 회사 대표들은 야반도주를 하지 않을까 걱정이 될 정도였다.


구글의 기술을 타사에 라이센스 주는 방법이 통하지 않을 경우 유일하게 남은 생존방법은 광고영업을 통해 수입을 거두는 것이었다. 치음엔 브린과 페이지는 광고영업을 하는 것에 대해 매우 못마땅하게 생각했었다. 그 이유는 다른 검색엔진들이 검색 결과를 내놓을 때 광고료를 지불하는 광고주의 사이트를 우선적으로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런 식의 관행은 고객들에 대한 신뢰를 배반하는 것으로 구글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다. 이는 또 설립 당초부터 회사 모토로 채택했던 “Don’t be evil”이라는 원리와도 배치되는 것이었다.


결국 브린과 페이지는 수입 창출을 위해 다른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야 했다. 즉 이들은 검색 결과 페이지를 두 부분으로 나눈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왼쪽 편에는 무료로 제공되는 검색 결과를 제공하면서도 여전히 최상의 결과를 보여준다는 구상이었다. 한편 오른쪽 편에는 사용자의 검색어 입력에 따라 달라지는 타겟 광고를 게재한다는 것이었다. 광고주는 특정 검색어가 입력됐을 경우 자사의 광고가 화면에 뜰 수 있도록 하는 대가로 광고료는 지불하게 되어 있었다. 또 광고는 그 적합도에 따라 순위가 매겨지도록 되어 있었다. 브린과 페이지는 또 광고 문구가 검색 결과와 동일하게 텍스트 포맷의 헤드라인과 링크, 그리고 짤막한 설명만이 붙도록 설계했다.



구글은 이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할 수 있을지를 예의 주시하면서도 급속한 성장을 계속 해나갔다. 2000년 이후 인터넷 주식 가치가 곤두박질을 치고 이들 기업들이 대폭적인 축소경영을 해나가는 상황에서도 구글은 채용을 계속했다. 더구나 Microsoft가 반독점소송사건에 휘말려 있던 상황에서 한때 이 회사에서 일하길 원하던 우수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은 속속 구글로 지원하기 시작했다. 이러나 저러나 구글은 잘될 수밖에 없었다.



무선 검색기능이 도입됨으로써 이동전화 사용자들은 구글 검색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됐다.

구글은 다른 웹사이트에게 자사의 검색 박스를 활용하는 것을 적극 장려했다. 더구나 완전히 새로운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통해 구글 쪽으로 사용자를 보내준 웹사이트에 검색 건당 3센트를 지불했다.

구글은 자사를 통해 검색이 이루어졌지만 야후 브랜드로 표시된 검색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야후와 계약을 맺었다.

구글은 스펠링 에러를 파악해내는 새로운 기능을 도입함으로써 사용자들이 웹을 통해 이미지 파일이나 전화번호 등 전엔 찾을 수 없던 수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됐다.무선 검색기능이 도입됨으로써 이동전화 사용자들은 구글 검색을 언제 어디서나 할 수 있게 됐다.

구글은 다른 웹사이트에게 자사의 검색 박스를 활용하는 것을 적극 장려했다. 더구나 완전히 새로운 파트너십 프로그램을 통해 구글 쪽으로 사용자를 보내준 웹사이트에 검색 건당 3센트를 지불했다.

구글은 자사를 통해 검색이 이루어졌지만 야후 브랜드로 표시된 검색 결과에 대해서 어떻게 처리할 지에 대해 야후와 계약을 맺었다.

구글은 스펠링 에러를 파악해내는 새로운 기능을 도입함으로써 사용자들이 웹을 통해 이미지 파일이나 전화번호 등 전엔 찾을 수 없던 수많은 정보를 찾을 수 있게 됐다.



2001년에 구글은 설립된 지 3년째가 됐다. 이 해에 최초의 이익으로 700만 달러를 기록했다.


구글의 경이적 성장


구글이 흑자를 내고 있었음에도 벤처캐피털 사업가들은 여전히 브린과 페이지에게 전문경영인 영입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고집하고 있었다. 두 사람은 자신들의 독립적 지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고 따라서 벤처캐피털 사업가들이 추천을 한 모든 지원자들에 퇴짜를 놓고 있었다. 그러나 결국 Sequoia Capital에서 1,250만 달러 투자를 회수하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다음부터야 두 사람은 전문경영인 영입을 심각하게 고려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Novell의 CEO를 지냈고 Sun Microsystems의 CTO도 역임했던 Eric Schmidt를 면접 봤다. 최초의 면접은 그렇게 잘 진행되지 못했으며 그 이유는 면접을 보는 시간 내내 브린은 슈미트가 Novell에서 구사했던 전략이 옮지 못했음을 지적하고 슈미트는 그에 맞서 논쟁을 벌였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브린과 페이지는 슈미트가 자신의 견해를 당당히 내세운 것에 대해 호감을 가졌다. 이들은 또 슈미트가 UC Berkeley에서 컴퓨터 사이언스 박사학위를 받은 것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했다. 일정한 막후 협상 끝에 두 사람은 슈미트를 구글 회장으로 임명했다. 두 사람은 슈미트가 회사 우량주 100만 달러를 매입함으로써 자신의 헌신도를 입증해야 한다고 고집했다. 슈미트는 이런 요구에 응했고 결국 쌍방간의 고용계약서는 2001년 3월에 서명되기에 이른다. 슈미트는 같은 해 7월에 구글의 CEO직도 맡게 된다.


두 사람의 구글 공동설립자는 회사를 키우는데 계속해서 전력을 다했다. 2002년에 이들은 America Online(당시 3,400만 명의 가입자를 보유)과 파트너십을 맺어 AOL 사이트의 모든 페이지에 구글 검색 박스를 설치하고 박스 아래에 “Search Powered by Google”이라는 문구를 넣기로 합의했다. 구글은 EarthLink와도 유사한 계약을 맺었고 Ask Jeeves와는 텍스트 기반 광고를 제공하기로 합의했다. 구글은 또 광고가 컴퓨터 스크린에 나타나는 것과는 상관없이 광고배너에 클릭이 있을 때만 광고료를 부과하는 방식을 채택했다. 또한 하루 24시간 온라인 거래를 가능케 하여 광고주들이 특정 키워드 검색 결과에 따른 광고 계약을 할 수 있게 했다.


구글을 통한 광고가 다른 어떤 온라인 광고에 비해서도 높은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널리 알려지게 되자 구글의 온라인 광고사업은 경이적인 성장을 기록했다. 구글은 Yahoo나 AOL, EarthLink, Ask Jeeves 같은 최고로 많이 알려진 웹사이트와 친밀한 관계를 맺었다. 오늘날 2만5천 개가 넘는 웹사이트가 구글의 검색 박스를 달고 있는 까닭에 다른 경쟁사가 도저히 맞설 수 없는 네트워크를 형성하게 됐다. 그런 덕택으로 구글은 2002년에 4억4천만 달러의 매출에 1억 달러의 이익을 기록할 수 있었다. 물론 구글은 새로운 경쟁업체들의 출현을 두려워하여 이런 사실을 극비로 부쳤다. 구글은 이제 인터넷 상에서 광고를 내길 원하는 회사나 개인이라면 누구든 가장 먼저 고려하는 사이트가 됐다.


구글의 경이적 성장


회사 설립 이후부터 브린과 페이지는 구글에서 일하는 모든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들에게 최소한 20%의 업무시간(일주일에 하루)을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소비하라고 요구했었다. 브린과 페이지는 그런 식의 정책이 똑똑한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효과적인 수단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이런 방식의 원칙은 두 사람 다 일주일에 나흘 강의를 하고 하루는 연구에 몰두하는 교수 집안에서 자라났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구글은 회사 엔지니어들에게 매주 20%의 시간을 어디에 써야 할 지에 대해서도 일체 정해놓질 않고 있다. 일부 직원들은 20% 시간을 한꺼번에 몰아서 썼으므로 한 달 넘게 자신이 원하는 일에만 몰두하곤 했다. 이런 방식을 통해 사람들은 성공적인 제품을 만들어내는데 필요한 유연성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장점이 잘 나타나는 예는 Google News에서 찾을 수 있다. 이는 인도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인 Krishna Baharat에 의해 개발됐다. 자신의 20% 시간을 활용함으로써 그는 뉴스를 실시간으로 일정한 유형으로 분류하고 이를 통신사나 신문사에서 몇 차례나 반복 보도하는지에 따라 그 중요도를 판단하여 중요한 뉴스는 페이지 위쪽에 올라가도록 만들었다. 그런 결과 각 사용자의 거주지역과 선호도에 따라 다르게 편집이 가능한 뉴스 페이지를 제공할 수 있었다.
또 다른 예는 온라인쇼핑몰 가격비교 서비스인 Froogle이다. 이 또한 맨 처음 20% 프로젝트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구글 회사 내에서 인기를 끌기 시작하자 브린과 페이지가 별도의 개발팀을 구성하도록 하여 개발이 본격화됐던 바 있다.


구글은 핵심 상품과 서비스를 끊임없이 개발해내고 있다. 2004년 4월 1일 구글은 온라인 사용자들에게 지금과는 다른 새로운 이메일 서비스인 Gmail을 선보이겠다는 발표를 했다. Gmail 어카운트 사용자들은 모두 1기가바이트 분량의 저장공간을 할당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이는 당시 Microsoft가 제공하던 저장공간의 500배에 Yahoo의 250배에 해당되는 엄청난 것이었다. 처음에 사람들은 이 발표가 만우절 농담이 아니냐고 반신반의했지만 머지 않아 이것이 구글에서 제공할 진짜 서비스라는 것을 알게 됐다. 구글이 이 무료 이메일 서비스를 제공하는 대신에 화면 오른편에 유료광고를 내겠다는 언급을 하자 비난의 여론이 들끓기 시작했다. 사회운동단체들이 이런 관행이 개인정보 침해라고 들고 일어나자 구글은 회사 이미지 면에서 손상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사람들이 Gmail의 운영방식에 익숙해짐에 따라 그런 오해는 불식됐고 자연스럽게 논란은 해소되기 시작했다.


구글이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었던 또 다른 분야는 웹 검색 결과에서 포르노 사이트를 걸러내는 것이었다. 일부 사람들은 그 전부터 구글을 이용하여 포르노 검색을 하고 있었고 회사는 그런 검색을 단속하지 않고 있었다. 구글은 섹스와 관련된 광고를 판매함으로써 일부 매출을 거두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런 것과 동시에 회사는 검색 결과에서 의도치 않게 포르노 링크가 나타나지 않도록 만전을 기하고 있었다. 회사에서는 SafeSearch 필터링이라는 기능을 도입하여 검색에서 일체의 포르노가 나타나지 않도록 했다. 구글은 어떤 종류의 광고를 허용하고 허용하지 않을지에 대한 분명한 기준도 발표했다. 즉, 구글에서는 주류, 인신공격, 담배, 총포류, 마약, 화약 등과 관련된 광고는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이는 사회에서 어떤 것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인지에 대한 회사의 입장 천명이나 마찬가지였다.

야후! 코리아 인수와 관련된 한바탕의 헤프닝, 그리고 야후와 구글의 서비스 역사보기






저녁의 한산한 시간을 통하여 접하게 된 다양한 정보들 그리고 한바탕의 헤프닝!

– SK커뮤니케이션즈, 야후코리아 인수 [한국일보 2006.04.06 18:31:01]

인수 관계자는 “미국 야후닷컴이 보유중인 야후코리아의 지분 100%를 전량 인수하는 협상이 진행중”이라며 “지분 일부는 매입, 일부는 SK텔레콤이 보유한 SK커뮤니케이션즈의 주식과 맞교환하기 위한 비율을 최종 논의중”이라고 밝혔다.

최연진 기자님 인수관계자가 누구신지 알려주실 수 있을까요? 너무나 디테일한 시나리오는 개인 혼자서 정보를 만드시기는 어려움이 있을듯..

– 포털업계 3+4위 “네이버에 도전장” [한국일보 2006.04.06 19:21:34]

이를 위해 미국 야후닷컴은 지난해 11월부터 연말까지 일본 소프트뱅크가 보유했던 야후코리아 주식 30%를 인수하는 지분 정리작업을 완료했다. 이에 따라 SK커뮤니케이션즈가 인수할 야후코리아의 야후닷컴 지분은 1,000억원대 이상이 될 전망이다.

100% 의 지분치고는 너무 적습니다. 과거 소프트뱅크로 부터 사드린 야후! 코리아의  33%의 지분과 영국, 독일, 프랑스의 30% 지분에 5억달러를 지불했었는데, 야후! 코리아의 100% 지분치고는 적은것 같습니다.

– SK컴즈, 야후코리아 인수 추진 [머니투데이 2006.04.06 20:41:42]

한편, 이같은 소식에 대해 SK커뮤니케이션즈와 야후코리아는 공식적으로 ‘사실무근’이라는 입장이다. 양사 관계자들은 “인수 논의 자체가 없었다”며 인수설을 강하게 부인했다.

그래도 양사에 연락을 해보시고 기사를 내신것 같습니다.

SK-야후코리아 “M&A 설 사실무근” [2006년 04월 06일 22:13, 연합뉴스, 속보]

SK 컴즈, 야후코리아 인수설 “사실무근”…성낙양 야후 코리아 사장 [2006년 04월 06일 23:21, 아이뉴스24, 속보]

SK 컴즈, 야후코리아 인수설은 왜?…SKT, 미국사업 때문 [2006년 04월 07일 00:26, 아이뉴스24, 속보]

그 뒤의 기사들은 사실무근, 오보 등으로 정리!!  덕분에 포탈 관계 종사자분들은 재밌는 한때를 보낼 수 있었던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국일보 기자분께서는 자신이 쓴 기사에 대하여, 분명한 입장을 취해주셨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어느 정도의 확신이 섰기 때문 아닌가요?

그러고 보니, 포탈의 M&A 의 역사는 참으로 파란만장한 것 같습니다.
성공적인 M&A 하나가 기업의 10년을 좌지우지 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습니다.




야후! 의 History 를 보면

[2002년]
02월
– Inktomi(검색엔진) 인수


[2003년]
07월
– Overture(검색광고 대행) 인수


[2004년]


03월
– Kelkoo(유럽 가격비교) 인수
08월
– Yahoo Local 베타 오픈(http://local.yahoo.com/)
09월
– MusicMatch(음악) 인수
12월
– Video Search 서비스 런칭(http://video.search.yahoo.com)


[2005년]


01월
– Yahoo Desktop Search 런칭(http://desktop.yahoo.com)
03월
– Yahoo!360(Blog+Social Networking) 런칭(http://360.yahoo.com)
05월
– Flickr(소셜 사진 공유) 인수(http://www.flickr.com)
– 메신저 7.0 베타 런칭(http://beta.messenger.yahoo.com)
06월
– Dialpad(VoIP 전문업체) 인수(http://www.dialpad.com)
– My Web 2.0(Social Search) 런칭(http://myweb2.search.yahoo.com/)
07월
– Konfabulator(위젯 개발업체:Pixoria) 인수(http://widgets.yahoo.com)
08월
– Alibaba.com(중국 경매업체) 지분인수 10억달러 투자
10월
– MS와 메신저 호환 발표(내년 2분기내 완료 예정)
– Podcasting 베타 서비스 런칭(http://podcasts.yahoo.com)
– Upcoming.org(Social Event Calendar) 인수(http://upcoming.org)
– 디지털 전자도서관 작업 시작(제휴에 의한 작업)
– Site explorer 베타 오픈(http://siteexplorer.search.yahoo.com/)
– Yahoo! Autos Custom 베타 오픈 (자동차 이용 정보 컨텐트)(http://custom.autos.yahoo.com/)
– 포터블 음악 등록 서비스 6.99달러에서 12달러 수준으로 인상 예정(http://music.yahoo.com/unlimited/)
– 야후 코리아 Konfabulator 한글화
– 블로그 검색(포드캐스팅 포함) 정식 론칭(http://news.search.yahoo.com/)
11월
– Yahoo Map 4.0 Beta 오픈(http://maps.yahoo.com/beta/)
– Travel Trip Planner(원스톱 여행 서비스) 런칭(http://travel.yahoo.com/trip)
– TiVo(PVR 업체) 제휴 : 인터넷 + TV
– Shoposphere(원스톱 쇼핑)런칭(http://shopping.yahoo.com/shoposphere)
– AOL 지분 인수 경쟁 포기 선언
– 야후 코리아 지분 본사가 인수 추진(소프트뱅크 지분도 인수하기 위한 협상 진행중)
12월
– RSS Enabled 메일 베타 런칭(http://whatsnew.mail.yahoo.com/)
– Yahoo Answers 베타 런칭(http://answers.yahoo.com)
– del.icio.us(Social Bookmarking) 인수(http://del.icio.us)


[2006년]


01월
– Yahoo! Go 전략 발표(http://go.yahoo.com/)
– 음악 Playlist 공유 커뮤니티 Webjay 인수(http://webjay.org)



그리고 구글의 History 도 대략 살펴보면

[2003년]


02월
– Pyra Labs 인수 / Blogger 리런칭(http://www.blogger.com)
04월
– Neotonic Software(CRM 기술업체) 인수
– Applied Semantics(Contextual 광고업체) 인수 : Google AdWords, AdSense에 활용
09월
– Kaltix 인수 : Google Personal 런칭
10월
– Sprinks 인수 : Google AdWords, AdSense 개선
– Genius Labs(블로그 제공업체) 인수


[2004년]


01월
– Orkut 베타 서비스 런칭(http://www.orkut.com)
02월
– Foogle(가격비교사이트) WML 지원(http://www.froogle.com)
04월
– Ignite Logic 인수
– Gmail 런칭(http://mail.google.com/mail)
06월
– Baidu(중국검색업체) 100만불 지분투자
– Picase(이미지 관리툴) 인수(http://picasa.google.com)
– Hello(Picasa add-on 서비스-IM) Hello 런칭(http://www.hello.com)
08월
– Google Print 추진 발표(http://print.google.com)
10월
– Keyhole(디지털 위성지도 업체) 인수 : Google Maps, Google Earth 역량 강화
– ZipDash(교통/지도 업체) 인수 : 목적 상동
– Where2(호주 지도업체) 인수 : 목적 상동
– Desktop Search 런칭(http://desktop.google.com)
11월
– Google Scholar 런칭(http://scholar.google.com)
12월
– Google Suggest 런칭(http://www.google.com/webhp?complete=1&hl=en)



[2005년]


01월
– Google Video 베타 런칭(http://video.google.com)
02월
– Google Maps 런칭(http://maps.google.com)
03월
– Urchine Software(웹 분석툴 업체) 인수
– DodgeBall(모바일 소셜 네트워킹 업체) 인수(http://www.dodgeball.com)
04월
– Google Local for Mobile 발표(http://mobile.google.com/local)
05월
– Google Personalized Home 런칭(http://www.google.com/ig)
06월
– Current Communications(케이블 업체) 100만불 투자
– Akwan Information Technologies(유럽/남미 R&D센터용) 인수
– Google Earth 제공(Downloadable)(http://earth.google.com)
– 4가지 OS에서 가능한 Toobar 제공(http://toolbar.google.com)
– Google Mobile Search 런칭(http://mobile.google.com)
08월
– Android Inc(모바일용 소프트웨어 제공업체) 인수
– Google Talk 베타 런칭(http://talk.google.com)
– Desktop Search2 베타버전 오픈(http://desktop.google.com) (정식오픈은 11월)
09월
– ARC 그룹과 중장기 리서치 파트너쉽 체결
– WiFi 시연(샌프란시스코)
– Blog Search(블로그 전문검색서비스) 런칭(http://blogsearch.google.com)
– Froogle 모바일 서비스 가격으로 소팅 가능하도록 재수정
– VoiceOne(VoIP업체)과 2년간 계약 체결


10월
– Google Reader(RSS Aggregater) 런칭(http://www.google.com/reader)
– Google Local과 Google Maps 통합(http://local.google.com)
– Picasa 한글판 외 20여개국 지원 개편(2.0->2.1)
– 멀티프로토콜 IM GAIM(http://gaim.sourceforge.net/) 개발자 영입
– 영국에서 상표권 분쟁으로 인하여 Gmail.com을 googlemail.com로 변경
– [3분기 실적: 구글, 순익 7배 이상 증가]
– 구글 대학검색 지원
– 온라인 장서화(미시건, 하버드, 스탠포드 등의 IVY 리그 대학) 진행 중
– IBM과 제휴하여 데스크톱 검색 엔터프라이즈 시장을 기반한 수익 모델 전략 진행


11월
– 구글 한국어 개인화 페이지 런칭(http://www.google.co.kr/ig)
– Google Local for Mobile 베타 서비스 런칭(http://www.google.com/glm/)
– Google Analytics 런칭
– Google Base 베타 런칭(http://base.google.com)
– Riya 인수 접촉 중(루머)(http://www.riya.com/)


12월
– AOL 지분 5% 인수(10억달러)


[2006년]


01월
– dMarc(라디오 광고업체) 인수(1억2백만달러/3년간11억3천만달러)


02월
– 구글 툴바 4.0 버전 출시


03월
– 웹 기반 워드 서비스 Writely 인수(http://www .write ly.com)
– 구글 파이낸스 베타 런칭(http://finance.google.com)

구글 열풍 다시보기





이정배 | 2005.12.07 | 주간경제 861호

구글이 향후 미디어, 유통, 통신, 금융 등의 산업간 컨버전스를 주도할 것이라고 열광하고 있다. 이러한 열광의 실체는 무엇인지, 과연 구글이 모든 것을 장악하는 정복자가 될 것인지 살펴본다.

최근 신문을 펴보면 연일 구글에 대한 기사를 마주친다. 하루도 구글에 대한 기사 없이 넘어가는 날이 없을 정도다. 제휴 체결이나 서비스의 출범과 같은 최근 동향부터 마이크로소프트(이하 MS)를 잠식한다거나 유통업에 진출한다는 등의 가상 시나리오도 쏟아진다. 유통, 통신, 방송, 컨텐츠 등의 산업 구분을 허물고 모든 산업을 장악할 것이라는 예측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열광에 대해서 우리는 좀 더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일단 구글이 어떤 회사인지, 그들의 전략과 성장 가능성은 얼마나 되는지 침착하게 생각해보자. 왜 사람들은 구글에 열광하는 것일까? 구글의 최근 행보는 어떻게 설명될 수 있을까? 구글이 시작하는 사업들은 모두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인가? 지금부터 하나씩 살펴보도록 하자.

■ 혁신적 수익 모델로 급속 성장

구글은 인터넷 검색 업체다. 한국의 네이버나 다음과 비슷한 서비스를 제공한다. 최근 발표된 ComScore 자료에 따르면 구글은 미국 인터넷 검색시장의 39%를 차지해 29%의 시장 점유율을 차지한 야후나 15%의 MSN(MS의 포탈서비스)을 압도하고 있다. 선발주자인 야후와 공룡 MS가 후원하는 MSN의 공세에도 불구하고 구글의 시장 점유율은 전년 대비 4.2% 포인트 늘어, 성장을 지속하는 모습이다.

구글의 매출은 2004년 3조원 대였지만 2005년에는 5조원대의 매출이 예상된다. 그야말로 폭발적인 성장이다. 이보다 더 놀라운 것은 34%에 달하는 영업이익률이다. 경쟁사인 야후의 21%를 월등히 앞서는 수준이다. 이러한 성장세가 반영된 구글의 시가총액은 120조원 대로 MS와 IBM, 인텔의 다음 수준이고, 경쟁사인 야후의 2배 수준에 이른다. 구글의 시장 가치가 삼성전자와 LG전자, SK 텔레콤의 시가총액을 합친 것보다도 더 크니, 실로 놀라운 규모다.

이러한 성장을 일구어낸 성장 엔진은 무엇일까? 바로 혁신적인 광고 모델이다. 인터넷 광고는 구글 매출의 99%를 차지한다. 구글은 검색 엔진 회사지만 주 수익원은 광고라는 의미이다. 인터넷을 사용하는 대부분의 고객들은 시도 때도 없이 뜨는 배너와 광고 화면들에 짜증을 낸다. 그러나 구글은 검색을 원하는 소비자와 광고를 원하는 광고주 모두를 만족시키는 광고 모델을 고안해냈다. 바로 키워드 중심의 타겟(Target) 광고이다. 타겟 광고란 고객이 찾고자 하는 키워드를 검색 창에 입력하면 검색 결과와 더불어 연관된 광고들이 화면에 노출되는 것을 말한다.

야후나 MSN 같은 구글의 경쟁자들은 검색 화면 여기저기에 광고주의 로고가 반짝이는 배너를 달고, 노출 빈도에 따라 광고비를 부과했다. 그러나 구글은 고객이 검색하는 키워드와 관련된 광고만을 노출시켰다. 이를 통해 고객은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더 빨리 찾을 수 있으며 광고주 입장에서도 비용 대비 높은 광고 효과를 누릴 수 있다. 고객이 광고를 클릭할 때만 광고비가 부과되기 때문에 타 포털에 광고를 게재하는 것보다 구글에 광고를 싣는 것이 상대적으로 더 쌌던 것이다. 고객들은 광고에 방해 받지 않고 검색을 할 수 있어 더 많이 구글을 찾았고, 광고비가 싸고 노출효과가 커 더욱 많은 광고주들이 구글을 찾았다. 구글을 이용하는 소비자가 많아질수록 광고효과는 높아졌고, 광고주들은 더 많은 돈을 구글에 지불했다. 이러한 선순환 고리가 구글의 성장 동력이다. 좀 더 생각해보면 모든 이를 만족시키는 사업 철학이 구글의 궁극적 성장 동력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 기술과 충성 고객이 향후 성장의 원동력

그러나 아직도 의문은 풀리지 않는다. 연간 매출의 20배를 훌쩍 넘는 시가 총액에는 구글의 미래 성장에 대한 시장의 기대가 반영되어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수익을 광고에 의존하는 구글의 성장 가능성을 왜 그렇게 높이 평가하는 것일까?

첫 번째 해답은 구글의 차별화된 기술력에서 찾을 수 있다. 구글을 써본 사람들은 대부분 구글의 검색 결과가 가장 정확하다고 입을 모은다. 다른 검색 엔진을 쓰면 검색 목적과 상관없는 정보들이 많은 반면, 구글은 꼭 필요한 정보만 순서대로 올려준다는 것이다. 또한 구글은 빠르다. 어떠한 정보라도 0.5초 이내에 최상의 결과를 내준다. 이러한 힘은 스탠포드에서 수학을 전공한 구글 창업자들이 십 여 년간 공들여 개발한 페이지 랭크 기술과 하이퍼 텍스트 매칭 기술에 연유한다. 구글은 키워드별로 고객이 페이지를 클릭하는 경로를 알고리즘화하여 수많은 웹 페이지들 간의 상호 관련성을 계산해 낸다. 페이지 간의 관련성과 페이지 내의 관련어 배치 등을 고려해서 고객이 원하는 결과를 빠르고 정확하게 도출해 내는 구글의 기술력은 타 포털들이 따라올 수 없는 수준이 되어 있다.

수많은 정보 속에서 진짜 정보를 찾아내는 구글의 기술력은 다양한 분야에 응용될 수 있다. 우선 구글이 최근 시작한 데스크톱 검색 프로그램은 사용자 PC 속의 각종 자료를 윈도우 탐색기보다 더 빠르게 찾아주는 것으로 큰 호평을 받았다. 이 기술은 유통업에도 응용될 수 있다. 고객의 쇼핑 기록을 알고리즘화하여 고객의 취향과 최선의 구매 대안을 도출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보의 홍수가 고객을 괴롭히는 시대에 정보의 옥석을 가려주는 구글의 기술력은 더욱더 빛을 발할 것이다.

또한 구글은 로열티가 높은 고객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있다. 구글은 매년 벌어들이는 막대한 광고비로 검색 기술을 강화하고, 새로운 서비스에 재투자함으로써 고객을 감동시키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생성된 고객의 로열티는 다시금 구글의 검색을 강화하는 선순환이 이루어지고 있다<그림 참조>. 2003년 서비스를 개시한 Gmail의 사례를 살펴보자. Gmail은 추천을 받아야만 사용할 수 있다. 한정된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기에 Gmail에 대한 사용자들의 로열티는 더욱 높아졌다. 서비스 품질도 과감하게 제고했다. 기존 포탈업체들은 500 메가 수준의 메일용량을 무료로 제공한 반면 구글은 2기가라는 압도적인 용량을 무료로 제공했다. 구글은 광고로 돈을 벌지만 자사 광고는 거의 하지 않는다. 대신 사업의 핵심과 고객의 이익이라는 측면에 집중하였고 이것이 고객의 로열티를 높였던 것이다.

■ 고객의 변덕과 지나친 광고 의존도가 문제

구글에도 약점이 있을까? 답은 ‘그렇다’이다. 검색과 인터넷 광고 기반으로 성장한 구글의 성장 모델 자체가 구글의 향후 성장을 걱정스럽게 만드는 위협 요소다.

우선, 구글이 제공하는 검색 서비스는 고객입장에서 교체비용(Switching Cost)이 거의 없다. 검색은 무료이고, 서비스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간이 들지도 않는다. 중독성도 없다. 어느 날 보다 강력하고 혁신적인 검색 엔진이 시장에 나왔을 때 고객들은 굳이 구글에 연연하지 않을 것이다. 마치 5년 전 전세계 인터넷 사용자들이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난 후발주자 구글의 손을 들어 주었을 던 것처럼 말이다. 이 새로운 강자가 MS가 될 것이지 아니면 또 다른 혈기왕성한 20대 청년 개발자가 될 것인지 아무도 장담할 수 없다.

두 번째 위험은 구글의 지나친 광고 의존도이다. 인터넷 검색광고에 대한 구글의 매출 의존도는 99% 수준에 이른다. 닷컴 붕괴 이후 한때 위축되었던 온라인 광고시장은 현재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있고, 검색 광고 시장은 전체 인터넷 광고 시장의 40%를 차지한다. 구글이 급격한 성장은 인터넷 광고 시장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만약 경기가 위축될 경우, 인터넷 광고 시장은 가장 먼저 위축될 것이다. 광고주들이 가장 우선적으로 줄일 수 있는 비용이 광고지출이기 때문이다. 또한 인터넷 사용자들의 행동 패턴이 향후 어떠한 방향으로 변화할 지 알 수 없기 때문에 검색광고의 미래가 달라질 수도 있다. 광고와 게임, E-commerce 등 분산화된 수익구조를 가지고 위험을 분산하고 있는 야후나 MSN에 비해, 오직 한 가지 수익모델에 의존하고 있는 구글은 이러한 위협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최근 구글이 보여주고 있는 다양한 행보는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 5년 후 구글의 모습, 세 가지 시나리오

구글의 성장 이력과 최근 동향을 종합할 때, 향후 5 년 동안의 사업 진화방향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검색광고에 매출을 의존하는 현재 수익 모델을 유지하되, 새로운 무료 서비스를 시작하여 고객 커버리지를 확대하는 방향이다. 더 많은 고객들을 구글로 끌어들이기 위해 검색 기능을 더욱 강화하고 고객의 로열티를 확보하기 위해 혁신적인 무료 서비스를 계속해서 내 놓는다. 그리고 이러한 고객기반 하에 광고수입을 지속적으로 확대해 나간다는 시나리오이다. 최근 구글은 전세계 도서관에 소장된 서적을 무료로 검색할 수 있는 구글 프린트(Google Print) 서비스를 선보였다. 또한 개인이 정보를 올리고, 이러한 정보를 다른 사람이 마음껏 검색할 수 있도록 하는 구글 베이스(Google Base)를 준비 중이라 한다. 고객이 경매 물품에 대한 정보를 올린다면 구글 베이스는 미국 최대의 온라인 경매 사이트인 이베이의 고객까지 끌어올 수 있을 것이다. 이와 같은 다양한 서비스를 시작함으로써 구글에 대한 고객 충성도를 더욱 제고하는 전략을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둘째로, 유료 서비스를 시작하여 광고에 집중되어 있던 수익원을 다양화하는 시나리오도 가능하다. 현재 형성된 고객의 로열티를 바탕으로 기존 서비스를 유료화해 나가거나, 앞서 언급한 구글 프린트, 구글 베이스 등의 서비스를 유료로 제공하는 것이다.

세번째 가능성은 구글의 검색 기술과 고객 기반을 바탕으로 미디어, 유통, 통신, 금융 등의 사업에 진출하는 방안이다. 이것은 한동안 신문에 회자되던 “EPIC2014”의 진화방향과 일치한다. 두 명의 미국 저널리스트가 내놓은 EPIC2014 시나리오는 2008년에 구글이 아마존과 합병하면서 “구글존” 이라는 초대형 기업이 탄생하고, 이것이 기존 포탈 및 미디어 시장은 물론 통신, 금융, 유통, 미디어 서비스의 컨버전스를 주도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구글존은 가상의 시나리오에 불과

구글은 어떤 모습으로 진화할까? 결론을 먼저 말하자면, 구글의 향후 모습은 첫 번째와 두 번째 시나리오의 절충형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된다. 구글은 어떻게든 광고에 대한 매출 의존도를 줄일 필요가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광고수입에 올인 되어 있는 사업의 리스크를 줄여나가기 위해서는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하고 성장동력을 찾을 필요가 있다. 최근 활발한 사업 확장은 이러한 맥락과 일치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검색이라고 하는 핵심은 바뀌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구글은 그 탄생부터 고집스럽게 핵심에 몰입해 왔다. 경쟁자들이 사업을 다변화할 때에도 구글은 검색을 더 강화하고 그 기반 위에 고객 커버리지를 확대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며 막대한 광고수입이라는 결실을 누려왔다. 이러한 맥락에서 최근 신문에 회자되는 구글의 문어발식 사업확장은 좀 더 냉철한 조명이 필요할 것이다.

● 현재로선 구체적 새로운 수익 모델 없어

구글은 현재 총 30여 개의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이 중에 2개는 현재 자체수익모델을 가지고 있고, 다른 11개의 서비스는 구글 광고와 연계되어 있으나 나머지 모든 서비스는 적어도 현재까지는 아무런 수익모델도 없는 상황이다. 예를 들어 구글뉴스(Google News)는 지금 가장 인기가 있는 뉴스 사이트이지만 야후나 MSN의 뉴스와는 달리 어떠한 광고도 없다. 반면 프리미엄급 이메일 서비스인 Gmail은 무료로 서비스 하는 대신 이 서비스에 링크되는 광고를 기대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투자가들은 구글이 새로 시작하는 서비스들이 모두 황금알을 낳을 것이라는 착각은 접어야 한다. 구글은 이 서비스들을 모두 수익모델화 하는 데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구글의 근간은 검색과 광고이고 아직도 그 근간은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 앞서 설명했듯이 구글의 사업영역 다변화는 검색이라는 기본을 강화하는 연장선상에서 봐야 하고 그 목표는 광고의 범위와 고객의 로열티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 경쟁자들도 전면 대응 체제

마지막 시나리오는 아직은 가능성이 희박하다고 생각한다. 산업간 컨버전스가 진행되면서 구글은 각각의 사업영역에의 고수들과 맞닥뜨리게 된다. 구글이 지난 7월 선보인 데스크톱 2.0은 새로운 운영체제의 대안을 보여주며 MS와의 직접적인 전쟁을 선포한 것이나 다름없다. 포탈 쪽에서도 MS와 야후가 칼날을 세우고 있고 구글베이스를 통해 직접적인 경쟁자로 떠오른 eBay는 최근 심기가 상당히 불편해져 있다. 구글이 푸루글(Froogle)이라는 가격비교 검색 서비스를 준비하자 월마트 같은 거대 유통기업들이 잔뜩 경계하고 있으며, 아직 수면위로 떠오르지는 않았지만 우호적인 인터넷 사업자(Internet Access Provider)들이 언제 돌변해서 통행세를 높일는지도 모를 일이다. 구글이 제한적인 인원과 수익구조를 가지고 이들 절정고수들을 모두 물리친다는 가설은 무리한 그림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 구글의 관심은 오직 고객 확대

구글 성공의 핵심은 고객이었다. 그리고 앞으로의 방향키도 고객일 것이다. 앞으로 고객의 변화에 대해 지금까지의 다른 어떤 기업보다도 더듬이를 높이 세우고 빠르게 따라갈 수 있는 기업이 구글이다. 구글이 사랑 받는 이유는 고객을 위한 기본에 충실해왔다는 점이었고, 그 기본은 빠르고 정확한 검색과 광고주들의 수익을 높여주는 관련성 높은 광고였다. 적어도 향후 5년간은 이 근본이 바뀌진 않을 것 같다는 전망을 해 본다. 구글이 골리앗 MS를 무너뜨리는 화끈한 경기를 기대한 관중이라면 다소 실망스러울 수는 있겠지만 구글의 주는 핵심 메시지는 고객과 사업 핵심에 집중하라는 것이다. 순수하게 핵심에만 집중해 온 노력이 결실을 맺고 고객의 로열티를 가져온 것이라면 지나친 비약인가? 물론 빌 게이츠가 지적했듯이 오늘 우리가 보는 것은 오직 빙산의 일각일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구글의 우직한 뚝심부터 배워야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보자. 연일 계속되는 구글 열풍이 시사하는 것은 무엇일까? 연간 매출이 5조에 불과한 회사가 매출의 20배 이상의 시가 총액을 기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기업은 앞으로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적어도 한 가지 시사점은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글은 사업 핵심에 집중하는 우직한 기업이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점이다.

사람들은 “관련성”이 높고 “심도” 있는 정보를 “빠르고” “편리한” 방법으로 얻고자 한다. 고객의 이러한 니즈를 모르는 기업을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을 정말로 만족시켜 준 기업은 구글 밖에 없었다. 야후를 비롯한 다른 포탈 업체들이 가급적 사용자가 웹사이트에 좀 더 오랜 시간 동안 머무를 수 있도록 각종 무기를 동원한 것에 비해, 구글은 이러한 끈끈이(Sticky features)를 없애고 고객이 가장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도록 해주었다. 인터넷 붐을 타고 성장한 포탈들이 기존 사업모델에 안주해 있을 때 후발주자인 구글은 고객의 본원적 니즈에 귀를 기울인 것이다.

지금의 구글 열풍도 마찬가지다. 구글은 고객의 본원적 니즈를 만족시키기 위해 우직하게 움직이고 있다. 그것을 두고 각종 시나리오를 그리며 우왕좌왕 하기보다는 구글이 어떻게 성장했으며, 앞으로 어떻게 변할 것인지, 그 일관성과 우직함을 먼저 배우는 것이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자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