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지(上智)와 하우(下愚)

나는 어떠한 사람인가? 하우를 가장한 상지가 될것인가? 실상은 상지로 포장한 하우인가?
사람들은 중용을 지키라한다. 그러나 중용을 지키라 함은 과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닌가?

아래의 글은 생각하게 만드는 좋은 글이다.







상지(上智)와 하우(下愚)




최상으로 지혜로운 ‘상지’란 요즘으로는 천재와 같은 인물이며,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는 ‘하우’는 바보이자 천치와 같은 사람을 칭하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데 공자(孔子)는 “상지와 하우는 이탈하지 못한다.”(上智與下愚不移)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공자의 말씀은 경(經)이어서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른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결정론적인 해석을 내려 봉건지배 이데올로기로 굳힐 수도 있지만,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놓고 역사를 진보케 하는 ‘하면 된다’라는 논리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후자 쪽의 해석으로 역동적인 역사 진행을 도모했던 분이 다산이었습니다. “상지와 하우는 인간 성품의 등급을 말함이 아니다.”(上智下愚 非性品之名)라고 전제하고는, “착함을 지키는 사람은 비록 악한 사람과 서로 붙어 지내도 착한 습관이 떨어져 나가지 않아 최상의 지혜로운 사람으로 부르지만, 악에 안주해버린 사람은 착한 사람과 아무리 붙어 지내도 습성이 옮겨지지 않기 때문에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부른다.”라는 부연 설명을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인간의 성품에 상, 중, 하의 세 등급이 있다는 중세의 논리를 뛰어넘어 ‘지키느냐’(守), ‘안주하느냐’(安)에 따라 최고의 지혜에 이르느냐, 아니면 최하의 어리석음으로 추락하느냐의 구별이 있을 뿐이라니 마음의 근대(近代)가 열려지고 있었습니다.

만약 태어날 때부터 왕후장상(王侯將相)의 신분인 ‘상지’가 따로 있고, 평생토록 천한 일에 얽매이는 하천계급이 따로 있다고 한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타고날 때야 똑같으나 어떻게 활용하고 단련시키느냐에 따라 상지도 되고 하우도 된다고 해야 인간에게 희망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신분과 계급이 타파되는 역사발전이 가능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산은 인간에게는 모두 ‘자주지권(自主之權)이 있어 자신의 결단으로 자기 문제를 해결할 권한이 부여되었다는 멋진 철학을 이룩할 수 있었습니다.

끝까지 버티고 지키느냐, 편안하게 자포자기하여 안주해버리느냐, 거기가 인생의 갈림길임을 다산은 명확하게 설명했습니다.

답글 남기기